제주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시절, 프레드릭 더스틴 김녕미로공원 대표(87)는 학생들에게 “제주에서 나오는 관광 수익은 제주에 머물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대규모 관광개발이 이뤄져 일자리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관광 수익이 지역에서 선순환될 때 지역이 발전하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더스틴 대표는 퇴직 후 제주 구좌읍 김녕리에서 관광지를 운영했고, 자신의 말을 고스란히 행동으로 옮겼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매년 학교와 지역을 위해 기부해 온 것이다.
미국 출신인 더스틴 대표가 제주에 정착한 것은 46년 전인 1971년이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교육학 전공을 살려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영어 가르치는 일을 했다. 제주는 아내의 선택이었다. 더스틴 대표는 “지금은 먼저 떠났지만 선교사였던 아내가 제주를 매우 사랑했다. 아내와 함께 제주에 집을 짓고 살다 보니 제주가 제2의 고향이 됐다”고 말했다.
더스틴 대표는 제주 이주와 함께 1979년까지 제주대에서 관광영어 강사를 했다. 1982년부터 1994년까지 객원교수로 제주대 학생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더스틴 대표는 강사 퇴임 후 제주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한국에서는 생소한 미로공원 조성에 돌입했다.
설계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영국의 미로 디자이너 애드리언 피셔의 도움을 받았다. 설계작업만 3년, 혼자 흙을 나르고 나무를 심으며 공원을 조성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더스틴은 “13여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려 1995년 국내 최초로 미로공원의 문을 열었다”면서 “제주의 역사와 지리를 담은 상징적인 미로공원을 만드는 것이 뜻깊은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녕미로공원에는 14개의 길이 얼키설키 뒤얽혀 있다. 그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9번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 길이 맞을까 틀릴까’라는 고민이 깊어진다. 결국 어느 길이든 선택해야 하는 미로는 마치 우리 인생사와도 비슷하다. 미로공원의 틀은 제주도의 모양을 하고 있다. 붉은빛이 감도는 바닥은 제주의 화산석인 송이를 썼다. 제주 자연을 담은 제주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스틴 대표는 미로공원이 수익을 내기 시작한 2003년부터 ‘관광수익은 지역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재직했던 제주대 관광경영학과에 외국인 교수를 더욱 채용해 달라며 3000만원을 기부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매년 학생들의 해외연수,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기부행렬을 이어갔고 누적된 금액은 7억3000만원에 달한다. 더스틴 대표는 “제주대학교는 제가 제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곳”이라고 말을 아꼈다.
더스틴 대표는 미로공원이 있는 김녕리 노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2003년 노인대학 설립비로 2003년 2000만원을 시작으로 매년 1000만원을 운영비로 기부하고 있다. 여름 야간 개장 때는 제주대 학생들이 미로공원에서 취업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개장 수익은 학생들 이름으로 다시 제주대에 기부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로공원과 인연을 맺은 김영남 김녕미로공원 이사(39)는 “오랜 기간 지역사회에 수익금을 기부하는 더스틴 대표는 기부는 특별한 봉사의 개념이 아닌 당연한 일, 사회적 책임과 같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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